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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빈 <당조삭방군연구> 1-5 북수 양 대도호부의 확립 pp.42~43

이에 근거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연연도호부는 정관 21년(647) 설립되어, 철륵제부를 관할했고; 영휘 원년 당이 거비를 평정한 후에는 단지 한해도호부를 증설하여, 오로지 거비부를 안설시키기 위한 낭산도독부와 정관 4년 설치된 정양, 운중 2부를 관리했고, 이 중에 속한 부중은 곧 돌궐인이었다는 것이다. 지역을 논하면, 이 두 부가 소할한 부락은 종으...

이홍빈 <당조삭방군연구> 1-5 북수 양 대도호부의 확립 pp.41~42

그러나, 도호부의 설치는, 필경 당정이 직접 파병하여 주류시키고 수비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직관계통은 중앙에 직예되었다. 연연부의 도호 이소립은 당조의 관원이었고, 그 전에는 양주사마였다.(117) 이로 인해 당이 연연부를 설치한 것은 막북의 땅에 대하여 더 유효한 공제를 시행하는 것을 표명하며, 이는 순수한 기미부주보다 일층 나아가야 했다. 당정이...

이홍빈 <당조삭방군연구> 1-5 북수 양 대도호부의 확립 pp.40~41

정관 21년 정월, 당 태종이 철륵제부를 책립하여 도독부주로 한 것은, 곧 앞의 글에서 언급한 회흘부에 한해도독부를 설립하고, 복골부를 금미부, 다람갈부를 연연부, 발야고부를 유릉부, 동라부를 어림부, 사결부를 노산부, 혼부를 고란주, 곡설부를 고궐주, 해결부를 계록주, 아질부를 계전주, 게필부를 유계주, 사결별부를 대림주, 백로부를 전안주로 삼은 것이...

이홍빈 <당조삭방군연구> 1-5 북수 양 대도호부의 확립 pp.39~40

나는 이 설명에 합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글 중에 따라 우리가 정관 4년 돌궐 항복 후를 보면[看到 간도], 기본적으로 반항활동이 출현한 적이 없고, 때문에 당정이 기미부주 체제를 취하여 안무하고 공제했다. 정관 13년(639) 결사솔이 당 태종을 모살하려 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보기에 개인의 행위에 속하는 것으로 보여{보아하니 ~임}[看上去 ...

이홍빈 <당조삭방군연구> 1-5 북수 양 대도호부의 확립 pp.38~39

제5절 북수{북변}[北陲 북수] 양 대도호부의 확립

이홍빈 <당조삭방군연구> 1-4 기미부주의 작용 pp.37

그러나, 이러한 체제의 작용은 한도가 있는 것이었다. 사실상, 그 작용의 한도는 또한 주요하게는 그 본신으로부터 왔다. 주부의 도독, 자사가 모두 각 부족에 예전부터 있던 수령을 겸임했기 때문에[因为 인위], 그들의 개인적인 향배는, 전 부 혹은 전 주민호의 행위를 불러일으키기 매우[很 흔] 용이했으며, 특별히 유목부족의 상하 협조는, 이러한 종류의 체...

이홍빈 <당조삭방군연구> 1-4 기미부주의 작용 pp.34~35

이러한[这里 저리] 당조 결책집단은 당 태종을 수장으로 하는 것이며, 위의 글에서 말한 기미부주 체제가 주요하게 창립된 것은 정관 연대였기 때문이다. 매우 많은 학자들이 태종이 봉행한 민족정책이 전의 사람들을 넘고, “중국 고대 한족 봉건 제왕 중 드물게 보이는[仅见 근견]” 평등하고 개명된 바라고 인식한다.(90) 학자들이 논단의 주요한 내용의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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