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Between Empires Ch.1-2 Mountains and Migration 書案

Mountains and Migration

 

Movement through mountain passes and along waterways facilitated the shift of population between the Yellow River and the Yangzi. There were three major migration routes—one each for the Yangzi’s three macro- regions. The easiest route started from the ood plain of the Yellow River and proceeded southeast across the almost imperceptible divide between the lower Yellow River and the Huai River basin in central China. There were no topographic obstacles to restrict movement other than the nu-merous marshes that lined the Huai. This indeterminate river had no clear channel but drained into several large marshes and lakes that waxed and waned with rainfall, following a changing course to the sea. At cer-tain times it emptied into the Yangzi itself.

산지의 통과로와 수로를 통한 이동이 황하와 양자강 간의 인구 이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3개의 주요한 이주 경로가 있었고-각각 양자강의 3대 대지역을 향한 것이었다. 가장 쉬운 경로는 황하의 범람원으로부터 중국 중부의 황하 하류와 회수 분지 간 거의 감지할 수 없는[imperceptible] 분리대를 거쳐 남동쪽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회수에 가로놓인 수많은 습지들을 제외하고 이동을 제한할 지형적 장애물이 없다. 이 부정형적[indeterminate]인 강은 명확한 수로가 없고 강우에 의해 차오르고[waxed] 줄어드는[waned] 여러 큰 습지와 호소들로 배수되어, 바다로 가는 변화하는 도정을 따라간다. 특정한 시기들에는 그 스스로가 양자강으로 비워졌다.

 

As this migration route approached the Yangzi, it split into an inverted Y, with the eastern branch leading to the mouth of the Yangzi and on to Hangzhou, while the western branch proceeded up the Yangzi to Poyang Lake. From there, refugees could travel down the Gan River and over the Meiling Pass to the Bei Jiang River and on to what is now Guangdong. Migrants following this southeast migration route tended to concentrate in the lower Yangzi region, where they provided laborers for estates and soldiers for the army around the southern capital of Jiankang (earlier Jianye; modern Nanjing).

이 이주 경로가 양자강으로 접근하면서, 양자강 하구와 항주로 이어지는 동쪽 지로와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 파양호로 이어지는 서쪽 지로로 역 Y자 형태로 나뉜다. 그곳에서, 남도자들은 감강을 따라 항행하고 매령의 산길을 따라 북강으로 가서 현재의 광동인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이 남동 이주로를 따라가는 이주자들은 그들이 사유지에 노동력을 제공하거나 군대의 병원이 된 남부의 수도 건강(이전의 건업; 현대의 남경) 주변의 양자강 하류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The second migration route began from either of the old Han capitals, Chang’an within the passes or Luoyang on the central plain. The route from Chang’an crossed the Qinling Mountains at Wuling Pass, a difcult climb to over 7,000 feet that traversed a plank road built along cliffwalls. It proceeded down the Han to the important river-junction city of Xiangyang. There it joined with the route that started from Luoyang and crossed the Funiu Mountains. The combined route proceeded south along the Han River to the Dongting Lake region. 13 Following this itiner-ary, refugees from the old Han capitals concentrated in the central Yangzi region, where they provided recruits for the Western Military Command. Some continued south along the Gan River and beyond to Guangdong, or southwest along the Xiang River to Changsha and then down to what is now Vietnam.

두번째 이주 경로는 두 개의 옛 한 왕조 수도들인 통로 내의 장안이나 중부 평원의 낙양 둘 중 한 쪽에서 시작한다. 장안으로부터의 경로는 암벽을 따라 판자[plank]로 된 길을 가로지르는 해발 7000피트를 넘는 험준한 등판로인 무령 고개에서 진령산맥을 지난다. 해 경로는 한수를 따라 중요한 교하 도시인 상양으로 진행된다. 그곳에서 경로는 낙양에서 시작되어 복우산을 지나는 경로와 만난다. 합쳐진 경로는 한수를 따라 동정호 지역으로 진행된다. 이 도정[itinerary]을 따라 옛 한 왕조의 수도들로부터의 피난자들은 그들이 서부에 병원을 제공한 중부 양자강 지역에 집중되었다. 일부는 감강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가서 멀리 광동으로 가거나, 남서쪽으로 상강을 따라 장사로 가서 그런 후 현재의 베트남으로 남하했다.

 

The third and most westerly route presented the greatest difculty and consequently was of the least historical importance. It led from Chang’an west to Baoji, then southwest over twisting mountain roads to the Min River basin in the heart of modern Sichuan. Fully one third of the 270-mile route employed trestle roads built into the sides of cliffs. A cele-brated poem by the Tang poet Li Bo (Li Bai) sang of the extraordinary difculties of following this treacherous path:

세번째이자 가장 서쪽의 경로는 가장 큰 난도를 보였으며 결과적으로 역사적 중요성은 가장 낮다. 장안으로부터 서쪽 보계로 이어진 후, 그러고 나서 남서쪽으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현대 사천성의 중심부인 면수 분지로 간다. 270마일 정도의 노정의 1/3정도는 모두 절벽 가에 가설된 버팀다리[treslte]를 이용한다. 당의 시인 이백의 유명한 시는 이 위험한[treacherous] 길의 비상한 어려움을 노래했다.

 

[]

 

The contrast between lowlands and highlands featured prominently in the history of rural China. North China’s lowlands were settled well be-fore the Warring States and early imperial periods, but the mountains were largely unexploited except for timber and an occasional mine or salt well. Early migrants to the south continued this pattern, forcing indige-nous peoples to nd refuge on higher ground. But with the coming of Daoism and Buddhism, monasteries and temples were established out-side the cities in the hills and were provisioned from previously untilled hillsides and mountainsides. These highlands became the “kernel” of the monastery’s holdings.

저지대와 고지대 간의 대조는 중국 지방사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북중국의 저지대는 전국 시대와 초기 제국 시대 이전에 잘 정착되었으나, 산지는 목재나 가끔 있는 광산 혹은 염정을 제외하면 대부분 미개발 상태[unexploit]였다. 초기의 남도자들은 이 패턴을 지속해, 선주민들이 고지대에서 피신처를 찾도록 강제했다. 그러나 도교와 불교의 전래와 함께, 도관{도량?}과 사찰이 도시 외곽의 구릉지에 세워졌고 이전에 경작되지 않았던[untilled] 구릉지대와 산지로부터 <<식량을>> 공급받았다. 이 고지대들은 도량의 재산에서 핵심이 되었다.

 

Basing the monastic economy in the highlands had several attractions apart from avoiding conicts with established proprietors. First, the Bud-dhists, like the Daoists, followed a Chinese tradition that associated spiri-tual activities with mountains, both as religious retreats and as the dwell-ing places of spirits with whom one might seek contact. Second, these marginal lands required capital inputs and organized labor for devel-opment, which the monasteries could supply and which the state and wealthy families had little interest in providing. Third, the monasteries became pioneers in new forms of industrial production, notably water-powered mills and oil presses, which required rapidly moving water—abundant on hillsides and along the upper reaches of rivers.

고지대에 사원 경제를 기반시키는 것은 기정착한 지주[proprietor]들과의 분쟁을 피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apart from] 여러 매력이 있었다. 먼저, 도교 신자들처럼 불교도들은 종교적 후퇴이자 누군가 접촉하려 할 수도 있는 영혼이 깃드는 곳 둘 모두로서 산과 영적 활동을 연결시키는 중국적 전통을 따랐다. 두번째로, 이 주변적 지역은 개발을 위해 자본유입과 조직된 노동력을 요했는데, 이는 사원들이 공급할 수 있는 것이었고 국가와 부유한 가문들이 공급하는 데에 흥미가 거의 없었던 것이었다. 셋째, 사원들은 특히[notably] 물레방앗간과 착유와 같이 구릉지와 강의 상류에 풍부한 빠른 유수를 요하는 새로운 형태의 산업 생산의 개척자가 되었다.

 

While these developments were most prominent in the south, with its hilly landscapes in close proximity to lakes and rivers, they also took place in the north. Thus at the same time that Chinese civilization began its long southward shift, it also started to colonize hills and mountains throughout the country.

호소와 하천에 가까운 구릉지대들 덕에 이러한 개발상들이 남방에서 가장 현저한 가운데, 그것들은 북부에서도 나타났다. 그러므로 중국 문명이 남향의 장기 조동을 시작함과 동시에, 또한 국가 전반의 구릉지와 산지를 식민화하기 시작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