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子 9 萬章 上 7 書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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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章問曰:「人有言伊尹以割烹要湯』,有諸?」

만장이 여쭈어 말했다 : “사람들이 말하길이윤은 할팽(자르고 삶음, 요리함)함으로써 탕에게 간하였다{규찰했다/규간했다?}[]’고 하는데, 그런 것이 있습니까?”

 

孟子曰:「否然伊尹耕於有莘之野而樂堯舜之道焉

맹자가 말했다 : “그렇지 않다. 이윤은 유신의 들에서 밭갈며, 요순의 도를 즐겼다.

 

非其義也非其道也祿之以天下弗顧也御馬千駟弗視也非其義也非其道也一介不以與人一介不以取諸人

그 의가 아니고, 그 도가 아니면, 천하로써 그에게 녹으로 준다 해도 돌아보지 않았고, 4천 필로 말에 태운다 해도 보지 않았다. 그 의가 아니고, 그 도가 아니면, 하나라도 남에게 주지 않았고, 하나라도 남에게서 취하지 않았다.

 

湯使人以幣聘之囂囂然曰:『我何以湯之聘幣為哉我豈若處畎畝之中由是以樂堯舜之道哉?』

탕이 사람을 시켜 폐백(예물)으로 그를 초빙하게 했다. 효효(욕심없이 바라봄, 대수롭지 않게 봄)하여 말했다 : ‘내가 어찌 탕의 빙폐(초빙하는 예물)로 어찌될 바이겠는가? 내 어찌 견무(전야)의 가운데 처하면서, 이로 말미암아 요순의 도를 즐김으로써 하는 것과 같겠는가{전야에 처하며 요순의 도를 즐기는 것만 못하다}?’

 

湯三使往聘之既而幡然改曰:『與我處畎畝之中由是以樂堯舜之道吾豈若使是君為堯舜之君哉吾豈若使是民為堯舜之民哉吾豈若於吾身親見之哉

탕이 세 번 가서 그를 초빙하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번연(태도를 바꿈)하여 고쳐 말했다 : ‘만일 내가 견무의 가운데 처하며, 이로 말미암아 요순의 도를 즐김으로써 하면, 내 어찌 이 인군으로 하여금 요순인 인군이 되도록 하는 것과 같겠는가{탕을 보필하는 것이 더 낫다}? 내 어찌 이 백성으로 하여금 요순{시기의} 백성이 되도록 하는 것과 같겠는가? 내 어찌 내 스스로에 친히 그것을 보이는 것과 같겠는가?

 

天之生此民也使先知覺後知使先覺覺後覺也

하늘이 이 백성을 내며, 먼저 안 자로 하여금 뒤에 아는 자를 깨닫게 하고, 먼저 깨달은 자로 하여금 뒤에 깨달은 자를 깨우치게 했다.

 

天民之先覺者也予將以斯道覺斯民也非予覺之而誰也?』

나는, 천하의 백성들 중 먼저 깨달은 자이다. 내가 장차 이 도로써 이 백성들을 깨우치려는데, 내가 그것을 깨우치지 않으면 누구겠는가?’

 

思天下之民匹夫匹婦有不被堯舜之澤者若己推而內之溝中

천하의 백성들 필부 필부가 요순의 은택을 입지 않은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서 넣은 것처럼 하였다.

 

其自任以天下之重如此故就湯而說之以伐夏救民

그가 천하의 중함으로써 스스로 임한 것이 이와 같았으니, 고로 탕에게 나아가 그에게 하를 벌하고 백성들을 구할 것으로써 유세하였다.

 

吾未聞枉己而正人者也況辱己以正天下者乎聖人之行不同也或遠或近或去或不去歸潔其身而已矣

나는 스스로를 굽혀 남을 바르게 한 자는 듣지 못했으니, 황차 스스로를 욕되게 하여 천하를 바르게 하는 것이랴? 성인의 행함은 같지 않으니, 누군가는 멀고 누군가는 가까우며,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떠나지 않기도 하는데, 그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돌아갈 뿐이다.

 

吾聞其以堯舜之道要湯未聞以割烹也

나는 요순의 도로 탕에게 간했다는 것은 들었지만, 할팽함으로써 했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伊訓:『天誅造攻自牧宮朕載自亳。』」

<이훈>에 말한다 : ‘하늘이 주벌하고 치는 것은 목궁에서부터였으나, 짐은 박으로부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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