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森義久 [安保改定から半世紀 体験的日米同盟考] 17 在韓米軍撤退の是非 書案

安保改定から半世紀 験的日米同盟考 17 在韓米軍撤退是非

 

日本奇妙対応

일본의 기묘한 대응

 

 ワシントンで「ナゾの国人」として話題めた朴東宣氏は1977には起訴されて、スタイリッシュな有名人から犯罪者いとなった。ワシントン連邦地裁国議員など6つの起訴した。

워싱턴에서 수수께끼의 한국인으로서 화제를 모은 박동선씨는 1977 9월에는 기소되어, 스타일리쉬한 유명인으로부터 한번에 범죄자에 미치게 되었다. 워싱턴 연방지재는 미국의원의 매수 등 6개의 죄목으로 그를 기소했다.

 

 民間でのビジネスで成功し、私人として国政界要人たちとの親交めただけだという本人主張とは裏腹に、起訴朴氏は(KCIA)にわれ、その諜報(ちょうほう)組織金炯旭李厚洛という歴代長官密命けて活動したとじていた。

민간에서의 비즈니스로 성공해, 사인으로서 미국 정계의 요인들과의 친교를 깊게 한 것뿐이라고 하는 본인의 주장과는 반대로, 기소장은 박씨가 실은 ‘’(KCIA)에 고용되어, 그 첩보조직의 김형욱, 이후락이라고 하는 역대 장관의 밀명을 받아 활동한 것으로 판단했다.

 

 起訴によると、朴氏はKCIAの秘密工作員として意見有利にするため、まずリチャハンナ下院議員に10ドルをって腹心とし、モリスドル下院議員上院議員など合計23旧議員たちに金品えていた。ときには封筒に100ドル分厚めて会内手渡すというっぽい手法だった。

기소장에 의하면, 박 씨는 KCIA의 비밀공작원으로서 미국의 의회의 의견을 한국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 우선 리처드 한나 하원의원에게 10만달러를 주어 복심으로 하고, 모리스 유달 하원의원, ‘’상원의원 등 합계 23명의 현구 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 당시에는 흰 봉투에 100달러 현찰이 든 두꺼운 묶음을 채워 의회 내에서 건넨다고 하는 조잡한 수법이었다.

 

 この大規模収事件当時、を辞任いこんだをもじって、コリアゲトともばれた。

이 대규모의 매수사건은 당시, ‘’을 사임에 몰린 ‘’을 비꼬아, 코리아 게이트 라고도 불렸다.

 

 朴氏収工作最大目的大統領公約としてした在韓米地上軍撤退むことだった。撤退案への対論めるためにの民主共和両党議員たちにアピルし、金品気前よく提供したのだった。同時からへの軍事援助増額大統領への米側支援拡大をも目指していた。

박 씨의 매수공작의 최대 목적은 당시의 대통령이 공약하여 내놓은 재한 미 지상군의 철퇴를 저지하는 것이었다. 철퇴안으로의 반대론을 강화시키기 위해 민주, 공화 양 당의 의원들에게 어필하고, 금품을 활수하게[気前よく] 제공한 것이다. 동시에 미국으로부터 한국으로의 군사원조의 증액과 대통령으로의 미측의 지원의 확대도 목지하고 있었다.

 

 朴東宣氏はほかののビジネスでは日本大手のや商社ともいつながりがあった。起訴時点ではっており、にはがなかったため、すぐに逮捕されることはなかった。国政府としては、国家防衛根幹となる在韓米軍部隊のを秘密工作員だった朴氏をないがしろにはできなかったのだろう。

박동선 씨는 다른 그림자 비즈니스에서는 일본의 거물인 ‘’와 상사와도 깊이 관계가 있었다. 기소의 시점에서는 한국으로 돌아가, 미국과 한국의 사이에는 ‘’가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체포되지는 않았다. 한국정부로서는, 국가방위의 근간이 되는 재한 미군부대의 ‘’을 저지할 비밀공작원이었던 박 씨를 소홀히[ないがしろに] 할 수 없었을 것이다.

 

 はワシントン特派員としてのからむこの収工作事件った。取材では国議会関係者たちが新任特派員にも協力的なのは意外なほどだった。このころ、政府報道陣には現在よりずっとオプンだった。

나는 워싱턴 특파원으로서 한국이 연관된 이 매수공작사건을 쫓았다. 취재에서는 미국의회의 관계자들이 신임 특파원인 나에게도 협력적인 것은 의외일 정도였다. 이 즈음, 미국의 정부도 의회도 보도진에는 현재보다 훨씬 오픈되어 있었다.

 

 とくに開放的だった。のシステムと関係があるのだろう。国人記者でもなくともでは差別されているようなじはまったくなかった。

특히 의회가 개방적이었다. 미국의 시스템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외국인기자라도 적어도 의회에서는 차별받는 것 같은 느낌은 전혀 없었다.

 

 朴東宣氏工作がかなり成功したようにみえたのは、ひとつには国側にカー大統領在韓米軍撤退案への広範存在したからだろう。超党派議員たちからの軍事脅威などを理由ばれた。とくに軍部しかった。その一直線べたのが在韓米軍のジョンシングロ将軍だった。

박동선 씨의 공작이 꽤 성공했다고 보인 것은, 첫째로는 미국측에 카터 대통령의 재한 미군 철퇴안으로의 반대가 광범하게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초당파의 의원들로부터 군사위협 등을 이유로 반대가 주장되었다. 특히 군부의 반대가 격했다. 그 반대를 일직선으로 말한 것이 재한미군의 존 싱그로브 장군이었다.

 

 将軍はソウルでワシントンポストの特派員に「米軍地上部隊撤退はのく」とり、「米韓両軍高級将校はみなカー大統領撤退計賢明さに疑問げている」とまで明言した。温和なカー大統領もこの言葉にはって、シングロ将軍をすぐ召還し、解任した。の戦略批判したマクリスタル解任されたケスとていた。

동 장군은 서울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특파원에게 미군 지상부대의 철퇴는 ‘’의 공격을 부른다라고 말하고, “미한 양군의 고급장교는 모두 카터 대통령의 철퇴 계획의 현명함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라고까지 명언했다. 온화한 카터 대통령도 이 언사의 반란에는 노해, 싱그로브 장군을 곧바로 본국으로 소환해, 해임했다. ‘’의 전략을 비판한 맥크리스털 미 ‘’가 해임된 케이스와 비슷했다.

 

 しかしおもしろいことに、この在韓米軍撤退是非論議最大焦点のひとつとなったのは日本立場だった。でも研究所のセミナでも、からの米地上軍撤退日本にどんな影響ぼすのかが提起された。日本はその撤退にどうするのか。米側視線はよりも日本してよりけられるかの印象さえあった。在韓米軍のありについての日本動向主張をじっとみつめるというふうなのである。

그러나 재미있게도, 이 재한미군의 철퇴 시비의 논의에서 최대 초점의 하나가 된 것은 일본의 입장이었다. 미국의 의회에서도 연구소의 세미나에서도, 한국으로부터의 미 지상군의 철퇴가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제기되었다. 일본은 그 철퇴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미측의 시선은 무엇보다 일본에 대해 더욱 뜨겁게 향하고 있는가 하는 인상마저 있었다. 재한미군의 상위에 대해서의 일본의 동향과 주장을 신중하게 바라보는 듯한 것이었다.

 

 米側からはかって質問疑問がつぎつぎにぶつけられた。ところが日本かった。奇妙でもあった。福田政は「在韓米軍撤退米韓二国間問題である」とまずべて、われせずともめる態度をみせたのだ。

미측으로부터는 당시의 정권을 향해 질문과 의문이 계속 부딪쳐 왔다. 그런데 일본의 반응이 둔했다. 기묘하기도 했다. 후쿠다 정권은 재한미군 철퇴는 미한 양국간의 문제이다라고 일단 언급하고, 우리는 관여하지 않는다 라고도 읽히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日本にはらかに影響する安全保障課題でも、透明直截(ちょくせつ)にはしてじられない体質があることを実地めて痛感したのは、このころだったのかもしれない。(ワシントン駐在編集特別委員

일본에는 자국에 명백하게 영향을 주는 안전보장의 과제에서도, 투명함이나 직절에는 결코 응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는 것을 내가 실지에서 처음으로 통감한 것은, 이 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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