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사와 마사아키 <당대의 '본전' 운용에 대해> 2-(3) 당대 후반기의 의론 – 목종기 이후 書案

(3) 당대 후반기의 의론 목종기 이후

 

<2>에서 장경 원년 이후의 본전기사를 보면, 21항 중 11항은 그 증액과 신설의 기사이다. 지금까지 보아 온 것과 같이, ‘본전의 운영이 곤란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증액, 신설이 진행된 것은 어떠한 배경으로부터였을까. 큰 이유로서는, 소위 헌종의 중흥 이후, 번진이 세력을 다시 성하게 한 결과, 당조의 정권 운영이 극히 힘들게 된 것이 들어진다. 그것은 재정의 궁핍에 여실히 드러나고, 관료들의 의론에서도 신변상의 비용 결핍을 호소하는 것이 목격된다. 예를 들면,

대화 원년 12, 전중성에서 주서했다. “상식국의 신구 본전은 총 980관문입니다. 엎드려 상식이 빈허한 것과, 또 선여 첨급이 없는 것으로, 성자를 빌며, 또 본전 2천 관문을 하사해주시기를 바랍니다.” … 칙지하여, 본전 1천관문을 하사했다. (<당회요> 93 제사제색본전 하, <책부원구> 507 방계부봉록)

라고 하여, 황제의 식사에 관련된 전중성의 상식국조차 비용이 결핍되었다. 그 보공을 위한 재원은 없었고, 다른 항목으로부터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태였다. 이 청원에 의해 새로운 본전을 주는 것이 되었으나, 요구액의 반분으로 깎였다. ,

회창 원년 4, 하남부에서 상주했다. “당 부의 식리본전은, 출거하여 사람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칙지하여, 하남부가 둔 바인 본전은, 명액이 있음으로써 하지만, 별도로 사급하는 것은 없어, 빈 것이 곧 밚으니, 의당 영하여 명액을 개정하게 하고, 이전의 이식을 들인 것에 의거해 비용을 충당하게 했다. (<당회요> 93 제사제색본전 하, <책부원구> 507 방계부봉록)

라고 하여, 문장이 생략되어 있으나, 하남부의 본전도 부족을 일으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행정기관 비용 결여는 조칙에 있어서도 인식되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칙이 나왔다.

개성 3 7, 칙하였다. “상서성은 장경 3년부터 본전을 사급받은 후, 세월이 오래되어, 산실된 액수가 많다. 혹 식리의 수가 많아, 은사를 거쳐 방면되었고, 혹은 민호가 포결되어, 징수할 곳이 없다. 들은 바와 같으면, 상서승 낭관이 성에 들어온 날, 매사에 공급할 바가 빈다고 한다. 반드시 의논하여 도움을 더하라.” (<당회요> 93 제사제색본전 하, <책부원구> 507 방계부봉록)

라고 하는 것과 같이, 행정중추인 상서성조차 직무에 필요한 물자가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관료들이 등청했을 때의 식사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이와 같은 당조의 재정적 곤궁이 본전제도의 유지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운영이 곤란한 제도가 되었어도, 손쉽게 화폐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본전제도는 귀중했을 것이다. 이리하여 당조 멸망까지 제도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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