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사와 마사아키 <당대의 ‘본전’ 운용에 대해> 시작하며 書案

당대의 본전운용에 대해

 

오오사와 마사아키

 

시작하며

 

나는 전에, ‘영비문제를 단서로 하여 당대의 중간계층의 존재형태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거기서 밝혀진 것은, 당대 후반기 이후, 더욱 상세하게 말하면 서력 800년경부터 이후, 중간계층 중에서 신흥의 지주계층을 중핵으로 하는 복합적 경영체가 비중을 높이고, 여러 수단을 구사해 스스로의 세력을 신장시키려 하는 동향의 존재였다. 그 동향의 일단이 영비등의 용어로 사료사엥 표현되었던 것이다. 거기서는 장원 경영자뿐 아니라, 저점 경영자 등의 유통업자가 요역면제의 특권을 획득한다고 하는 활동을 통해, 경제활동에 있어 존재감을 강하게 했다.

그러면 당대에 있어 중간계층의 존재형태를 고찰할 재료로서는, ‘영비문제 외에, 그들의 사료와 함께 얽혀 나타나는, 구각자금의 운용활동이 있는데, 전고에서는 이 점을 깊이 논할 여유가 없었다. 이것은 근년, 이금숙이 재정사 연구 중에서 실증을 진전시켰고, 또 국가재정의 공용전부문으로서 와타나베 신이치로가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연구한 문제이며, 그 실태가 해명되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소론에서 문제로서 하고 싶은 것은 국가재정이라고 하는 시점이 아니라, 그 자금운용 정책의 역사적 변화 및 거기에 밀접하게 연관된 중간계층 등 운용자의 동향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 소위 국가의 자금이란 모모 본()’이라고 칭해지는 것으로, 성격에 의해 나누면 두 종류의 본전이 있었다. 하나는 공해본전, 운용수익을 올리는 것에 의해 행정의 필요경비를 조달하는[まかなう] 자금이다. 이들은 식리본전’ ‘식리본전등으로 칭해진 것도 있다. 그 수익 확보의 방법으로서는 관, 리나 민간인이 운용하여 이익을 올리는 경우와 관영 고리대의 형태로 이식을 수탈하는 경우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상평(경중)본전으로, 주로 곡물가격의 안정을 꾀하기 위한 자금이었다. 이는 곡물 등의 시장가격의 상하에 따라 국가가 매매를 행해, 가격을 안정시키려 하는 자금이었기 때문에, 수익을 올리는 것은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한편, 전자의 수익은 관료의 봉급과 관청의 운영, 유지경비 등에 충당되었다. 따라서 자금 운용 활동이 잘 되지 않으면, 이들의 비용은 준비되지 않고, 행정 운영의 실무에 지장을 주게 되는 것이 된다. 국가 기구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기본적 수입이었고, 확실한 수익이 요구도이ㅓㅆ다. 이를 위해 국가로서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책이었으나, 지방에서는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활동이 되었고, 혹은 매관정책과 이어져, 왕조 지배로서의 조리를 맞게 한다[]는 관료들로부터 비판을 초래한 것이 되었다. , 당대 후반기에는 본전의 운용이 가져온 여러 종류의 폐해도 지적되는 것이 되어, 그 폐지나 개선을 요구받게 된 것도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현실문제로서 행정경비는 불가결한 지출이었고, 무언가의 방법에 의해 자금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정책의 실시에 당하여서는 중간계층의 경제활동에 관련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소론에서는 당대에 있어 공해본전등의 본전운용정책의 변천에 대해 고찰하는 것과 함께, 중간게층이 그것과 어떻게 관계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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