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이 히로유키 <즉위 전의 당 태종 진왕 이세민 집단의 북제계 인사의 분석> 결어 書案

결어

 

본고에서는 당의 태종 정권의 분석을 행하는 전제로서, 이세민을 제위에 밀어올린 배후세력에 대해, 선행연구로서 중시되어 온 북제계 인사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를 시도해 보았다.

먼저, 이세민 집단의 북제계 인사의 혼인관계를 정리하면, 방현령, 노적송, 노군윤, 이현도, 봉륜, 봉태 등이, 혼인관계로 맺어져 있엇다. 그리고, 교유관계에 대해서 검토하면, 구 북제의 문림관계 방씨 그룹도 포함한, 수의 명신으로서 북제계 인사인 설도형의 그룹의 출신자가, 집단성으로써 이세민 집단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 설도형 그룹과 이세민을 결합시킨 것은, 설도형 그룹과 파이프를 갖고, 이세민집단의 인재 수집에 진력한 방현령이었다. 이에 기반하면, 그의 영향력은 제수 유역의 인사에 머물지 않고, 더욱 광범위한 북제계 인사에까지 미쳤다는 것이 판명된다.

다음으로, 설도형 그룹의 출신자가 집단성으로써 이세민 집단에 참가한 배경에는, 공통의 정치 목적이 존재했다고 상정했다.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해명하기 위해, 설도형이 수의 정계에서 어떠한 입장에 있었는가를, 사예대부에 취임한 시기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했다. 설도형의 사예대부 취임은, 양제의 관중본위정책으로부터 벗어나려 하는 방침에 관한 처치였다. 그러나, 설도형은 그 기회를 이용해, 속관을 자기의 당파인 북제계 인사로 굳히고, 도를 넘어 북제계 인사를 옹호했기 때문에, 사형에 몰아넣어졌다. 이와 같은 설도형의 모습으로부터, 이덕림에 대신하여, 수대 중후기에 북제계 인사의 대표적 입장이 되었던 것, 그 정치 목적이 북제계 인사의 옹호에 있었다는 것, 그것은 그의 죽음에 의해 실패했다는 것, 등의 점이 밝혀졌다.

수말의 동란에 직면하여, 설도형 그룹의 계보를 이은 자들은, 당의 창업에 적극적으로 공헌해, 이덕림, 설도형 이래의 숙원인 북제계 인사의 지위 개선을 꾀하려 했다. 그 목적은, 산동에 지반을 구축하고, 정권의 탈취를 꾀한 이세민의 이해와도 합치되어, 양자의 결합은 그와 같이 되어 실현되었던 것이다.

야마시타 쇼우시 씨는, 현무문의 변에 있어, 이연 집단=관롱, 이세민집단=산동의 대립이라고 하는 도식을 적용하는 것에 주저했다. 확실히, 이연 집단, 이세민 집단 모두, 북주계, 북제계, 남조계 등, 다종다양한 인사를 포괄하고 있었고, 일견 그 도식이 성립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이세민 집단의 북제계 인사들이, 관롱계인 북주, 수 정권에 의해 폄하되어 온 자신들의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여, 이세민을 추대하려 했던 것을 보면, 역시 이 사건의 한 요인으로서, ‘관롱과 산동의 대립이 있었던 것이다.

, 야마시타 씨는 이세민이 산동집단, 이연이 태원 원종으로, 각각 다른 기반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부터, 현무문의 변을 정권 구조가 변화하는 계기로 했다. 그러나, 이세민 집단에 있어, 북주계 인사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되고, 당실 이씨도 또한 본래는 북주계이며, 반드시 북제계만을 기반으로 한 것은 아니기에, 당 정권의 구조가 이세민 즉위를 게끼로 변화했다고 하는 것은, 보류해 두자. 필자의 금후의 과제는, 이세민집단의 북주계 인사를 분석하고, 본고의 고찰을 기반으로 한 위에, 태종 정권의 성격을 해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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