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 전의 당 태종 진왕 이세민 집단의 북제계 인사의 분석> 1-(2) 이세민집단의 형성과 설도형의 인맥 書案

(2) 이세민집단의 형성과 설도형의 인맥

 

전절에서는 진왕부의 북제계 인사 간의 혼인관게를 확인했는데, 이어서 그들의 교제관계를 보자. 이세민 집단에 속한 북제계 인사, 혹은 그 형제, 연자의 정사의 열전 중에서는, 입전된 인물이, 어떤 인물과 우의를 맺거나, 혹은 추천되거나, 혹은 그 인물이 유망하다고 평가된, 기사가 누차 확인된다.

예를 들면, 북제의 종실의 계통을 이어받은 고사렴( 1-2)의 열전(<구당서> 65)에는,

()사렴은 젊어서 기국이 있었고, 자못 문사를 섭렵했다. 수의 사예대부 설도형, 기거사인 최조예가 모두 선달했다고 칭찬했고, 고사렴과 더불어 나이를 잊은 우호를 맺었다.

라고 하여, 고사렴은, 설도형, 최조예와 망년지교를 맺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설도형이라는 인물로, 그는 명문 하동 설씨 출신으로, 북제, 북주에 사관했고, 수대에는 내사시랑, 사예대부 등의 요직에 복무했으며, 대표적인 북제계 인사의 한 명으로 보인다. 더욱이 그 자식인 설수( 1-8), 설도형의 형 설온의 손자에 당하는 설원초( 1-9), 함께 이세민의 브레인으로서 유명한 진왕 18학사로 이름을 잇고, 혈연에 당하는 설회욱( 1-10)도 또한 천책부공조참군이 되어, 이들의 사실은, 설도형의 일족이 이세민 집단의 중요한 구성원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고사렴과 같이, 설도형과 인연이 깊은 인물로, 이세민 집단의 온대아( 1-11)가 들어진다. 온대아의 동생, 온언박의 전(<구당서> 61)에는,

처음에, 그 부친의 친구 설도형, 이강이 항상 ()언박 형제 3명을 보고, 모두 기이함을 찬찬하여 말했다 : “모두 경상의 재능이다.”

라고 하여, 온대아 형제는, 부친 온군유의 친구인 설도형, 이강으로부터 경상의 재라고 평해졌다고 한다. 이로부터는, 온군유 부자가 세대를 넘어, 설도형과 교제한 모습이 엿보인다. 이와 같이, 설도형과 세대를 넘어 교제한 이세민 집단의 북제계 인사의 예로서, 안사고( 1-13)가 들어진다. <구당서> 73 본전에는, 그가 안양현위가 된 때의 사적을 전하여,

이때 설도형이 양주총관이 되어, 그 조부와 더불어 구연이 있었는데, 또 그 재능에 기뻐하여, 철문(작문)한 바가 있어, 일찍이 그 이병(우열)을 지적[掎摭]하게 하여, 심히 그와 친일(친밀함)했다.

라고 한다. 안사고는, 입관 도상의 이연군에 투신해, 이세민의 막부인 돈황공부 문학이 되었고, 고조조에서는 중서사인이 되었다. 현무문의 변 전야, 그는 이미, 이세민의 막료가 아니었으나, <신당서> 201 문예상 원랑전의 이세민파의 인사를 열거한 기사에 그 이름을 남겨, 이세민 집단으로 보이는 인물이다. 상기의 사료로부터는, 그의 조부 안지추도 또한, 설도형의 구우였고, 그 자신도 또 설도형과 친하게 교제한 것을 알 수 이싿. 그것에 더하여, 안사고의 부친 안사로( 1-12), 진부기실참군으로 근무했고, 동생 안상시( 1-14)도 또한, 진부 문학관 학사로 발탁되어, ‘진왕 18학사에 꼽혀, 함께 이세민 집단에 참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세민 집단에는, 설도형과 관계가 깊은 인물로서, 설수, 설원초, 설회욱, 고사렴, 온대아, 안사로 부자가 들어지고, 그 중에서도, 온대아의 부친 온군유, 안사로의 부친 안지추는, 설도형의 친구였다. 온군유는 북제에 사관하여 문림관 학사가 되었고, 수에서는 사주사마, 사예종사를 역임했다. 안지추는, <안씨가훈>의 저자로서 유명하고, 처음에 남조의 양에 사관하였으나, 후경의 난에 말려들어, 우여곡절을 거쳐, 북제, 북주, 수에 사관한 인물이다. 북제에서는 황문시랑이 되었고, 문림관학사를 겸임했다.

온군유, 안지추 등이 임명된 문림관 학사는, 설도형도 취임하고 있었다. 문림관이란, 북제 말기인 무평 4(573)년에, 한인 귀족 그룹의 영수 조정의 주선[肝煎(]으로, 유서 <수문전어람>의 편찬을 목적으로 하여 설립된 아카데미였다. 당시의 북제 정계는, 훈귀, 은행, 한인귀족이 3파로 되어 항쟁하고 있었고, 한인귀족의 아성이라고 하는 측면도 있었다. 문림관학사는 대조문림관이라고도 불리는, 이 학관에 간 학사의 일이다. , 설도형, 온군유, 안지추도 또한, 그 멤버였다.

설도형, 온군유 부자, 안지추 부자들의 교제로부터도 판명되는 것처럼, 그들 문림관계의 결속의 강함은, 그 자제의 세대에까지 미쳤다. 그리고, 문림관게의 인맥, 특히[とりわけ] 설도형의 인맥은, 이세민집단의 구성 요소로서, 중요한 부분을 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세민 집단의 북제계 인사 그룹이, 문림관계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전절에서 서술한 방씨 그룹도, 중요한 구성요소였다. 그러면, 설도형과 방씨 그룹에 속하는 이세민 집단의 북제계 인사(1 방현령 2 노적송 3 노군윤 4 봉륜 5 봉태 6 이현도), 어떤 인간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거기에 대해 검토한 결과, 설도형과 직접 교류한 가능성이 있는 것은, 1. 방현령, 2. 노적송의 2명이었다. 이하, 고증의 결과를 보자.

 

1. 방현령( 1-1)

방씨 그룹의 중심인물인 방현령과, 설도형이 직접 교류를 가졌다고 하는 기사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방언겸은 <수서> 66 본전에,

내사시랑 설도형은, 일대의 문종이었고, 위망이 청현했으며, 더불어 교결한 바가, 모두 해내의 명현이었다. 방언겸의 위인을 중시하여, 깊이 우경함을 더했다.

라고 하는 것과 같이, 설도형과 친밀하게 교제했다. 더욱이, <북사> 39 방언겸 전에서는, 방언겸과 우의를 맺은 인물로서 왕소, 고구, 이강, 낭무, 낭영, 류욱 설유 등 7명을 열거하는데, 그 중, 설도형과 연이 깊은 관계가 있었다고 보이는 인물을 4명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하에 고증한 결과를 서술한다.

A 왕소

왕소는 등선진등씨의 연구에 의하면, 문벌 태원 왕씨(대방)에 이어지고, 북제에서는 문림관학사가 되었으며, 수에 사관해 저작랑이 되었다. 왕소는 문림관계였기에, 설도혀오가의 교류가 있었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B 고구(고효기)

고구는 자를 효기라고 하고, 북해군 출신이ㄷ. 북제에 출사하여 평원태수가 되었고, 수의 양제 때에, 이부시랑까지 승진했다. <수서> 66 본전에는,

하동 설도형은, 당세에 재량이 높았다. 매번 고구를 청감함이 있다고 칭찬하고, 문필을 하는 바는, 반드시 먼저 고구에게 초정하게 하도록 함으로써 하고, 그런 후에 내었다. 고구는 저가(폄훼)하는 바가 있어, 설도형이 일직이 차복하지 않았다. …중략두여회, 방현령 등을 추거하여, 뒤에 모두 공보에 이르니, 논자들이 고구가 사람을 알아보는 식감이 있다고 칭찬했다.

라고 하여, 설도형과 깊은 교류가 있었을 뿐 아니라, 이세민집단의 방현령, 두여회를 추거한 인물로서 알려져 있다.

C 이강

이강은 <구당서> 62 본전에 의하면, 산동의 발해수현에 본관을 두었는데, 부친 이제는 북주의 거기대장군으로, 자신도 북주의 제왕 우문헌의 참군으로 기가했고, 북제계가 아닌 북주계이다. 전게한 <구당서> 61 온언박전에 있는 대로, 설도형, 온군유의 우인으로, 온씨의 형제를 설도형과 평가했다. <구당서> 73 안사고전에 의하면, 안사고도 또 그의 추천으로 안양현위가 된 것처럼, 문림관계의 인물과 교류를 가졌다.

D 설유

설유는, 수에 출사하여 양성군연이 되었다. 설도형의 혈연으로, 설수의 계족부에 당한다.

상기의 고증에 의해, 설도형과 방언겸 상호의 교유관계에, 공통되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 방언겸이 교유한 인사에는, 설도형과 같은 문림관계의 왕소가 있고, 이강에 의해 문림관계와 친한 인물이 있다. 이상의 사실은, 방언겸의 인맥이 문림관게에까지 미쳤다는 것을 시사한다.

, <구당서> 73 설수전에는,

설수의 자는 백포이고, 포주 분음 사람이며, 수의 내사시랑 ()도형의 아들이다. …중략진부 기실 방현령이 그를 태종에게 천거했다. …중략진부주부를 배수했고, 섬동도행대 금부낭중을 판직했다.

라고 하여, 방현령은, 아버지의 친구였던 설도형의 아들 설수를, 이세민에게 추천하고 있다. 그로부터, 양자의 부친 사이의 교유관계가, 자식의 대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엿보인다. 방현령과 설도형은 직접 교유를 보인 사료가 없어도, 부친 방언겸 및 그 인맥을 통해, 교제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2. 노적송( 1-4)

노적송은 전절에서 표현한 혼인관계 이외에, , <구당서> 81 노승경전의 상세한 기사 이외, 사적이 거의 전하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수말, 하동현령이 되었으나, 이연과 구교가 있었기에, 태원에서 거병한 이연의 군대에 참가했다. 당 창업 후, 이세민의 막부에 섬동도행대 병부낭중으로서 맞아들여져, 후에 태자솔경령이 되었고, 곧 사망했다고 한다. 그도 또 설도형과 직접 교유한 기사는 보이지 않으나, 그 부친 노사도는 북제의 문림관 학사로, 설도형의 우인이었다. 문림관계인 설도형, 안지추, 온군유 등이 세대를 넘어 교제한 예로부터 보아, 노적송도 또 직접 설도형과, 교유관게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 검토한 방씨 그룹의 6명 중, 설도형과 강한 연대가 있었다고 추측되는 것은, 방현령과 노적송 뿐이었다. 그러나, 방씨 그룹은 혼인관계로 맺어져 있기에, 필연적으로, 3. 노군윤, 4. 봉륜, 5. 봉태, 6. 이현도 등도, 설도형과는 접점을 갖고 있는 것이 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세민 집단의 아래에 있어, 인재 수집에 진력한 방현령이 방씨 그룹뿐 아니라, 문림관계와도 강한 유대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방언겸의 교유관계가 문림관게에까지 미쳤던 것과, 방현령이 설도형의 아들인 설수를 추천한 것으로부터도 확인된다. 이로부터, 방현령이 그 인맥을 구사해, 북제계 인사를 이세민 집단에 결집시켰을 가능성은 충분히 생각된다. 야마시타 쇼우시 씨는, 방현령의 영향력을 제수 유역의 인사만에 한정시켜 논하고 있으나, 본절에서 서술한 혼인관계, 교유관계에 기반할 경우, 그보다 광범위한 북제계 인사에까지 영향력이 미쳤다는 것이 판명되는 것이다.

, 상기에 서술된 방현령의 인맥은, 시점을 바꾸면, 설도형의 인맥이라고도 말해진다. 그로부터는, 설도형이 문림관게에 머물지 않고, 광범위한 북제계 인사와 교제한 것이 엿보인다. ‘1’로부터는, 북제계인사 24(설도형의 일족을 포함) , 문림관계와 방씨 그룹을 포괄한 설도형의 인맥에 연한 인물이, 15(No. 1~15)에 달하여, 과반수를 넘는다. 그것은, 그들이 이세민집단에, 집단성을 유지해 참가한 증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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