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이 히로유키 <즉위 전의 당 태종 진왕 이세민 집단의 북제계 인사의 분석> 서론 書案

즉위 전의 당 태종 진왕 이세민 집단의 북제계 인사의 분석

 

호리이 히로유키

 

시작하며

당의 2대 황제 태종 이세민은, ‘정관의 치로 칭해지는 당대의 확립기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 치세는, 무덕 9(626) 6 4, 현무문의 변에 있어, 형과 동생을 살해하고, 부친 고조(이연)에게 퇴위를 강박한 것에 의해 초래되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엄한 권력투쟁을 거쳐, 다음의 정관의 치를 현출시킨 이세민 집단이란, 어떠한 것이었을까. 그 인적구성으로부터 성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세민의 아래에 결집한 세력의 전체 상을 보이고, 기초적 연구를 행한 것은, 누노메 조오후 씨였다. 그는 고조기의 3 6, 이세민의 진왕부, 이건성의 동궁, 제왕 이원길의 제왕부의 인적구성을 재현해, 개개의 인물의 계보를 분석했다. 그 위에, 태종 정권은 기본적으로, 북조 후기의 지배층으로부터 변질되지 않았다는 것을 논하고, 서위, 북주의 지배층이 측천무후의 입후까지 이니셔티브를 장악하고 있었다고 한 진인각씨의 관롱집단설을 보강했다.

그 진인각씨인데, 그는 이세민 집단의 구성 요소에 대해, ~당초의 사서에 보이는 산동호걸의 존재에 착목했다. 진씨에 의하면, 산동호걸이란 북위 시대에, 산동 방면에 사민되어 영호가 된 고거 정령에 연원을 가진 신흥게층이었다고 한다. 이세민은 쿠데타를 일으키는 데에 당하여, 낙양을 거점으로 하여 산동 지역에 지반을 구축하기 위해, 그들의 무력을 활용했다고, 그는 논했다. 이 진씨의 설이 계기가 되어, 이세민집단의 형성에 산동출신의 인사가 깊이 관련되어 있었던 것이 인식되게 되었다. 진씨는, ~당초의 정치사를, 관롱지역에 기반한 관롱집단과 산동지여겡 기반을 가진 산동집단 2개의 지역집단의 대립 항쟁사로서 다루었고, 현무문의 변도 또한, 그 한 장면으로 위치시켰다.

이와는 별개로, 케가사와 야스노리 씨는, 북주 수 정권이 정복한 북제의 유신을 냉대했고, 그 권력기반인 산동지역을 강압적으로 통치한 것이, 수말의 동란의 배경이었던 것을 밝혔고, 현무문의 변의 배경에 관롱과 산동의 대립이 있었던 것을 시사했다. 이 설을 따르면, ~당초에 있어, 산동집단의 중심에는, 북제계 인사가 관계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근년에 이르러서도, 이 이세민집단 중의 북제계 인사는 주목되고 있어, 이금숙씨, 야마시타 쇼우시 씨의 전론이 나와 있다.

그 중 이금숙씨는, 진씨의 관롱집단 및 산동호걸의 정의를 따른 위에, 관롱집단에 속한 이세민, 양현감, 이밀의 3명을 비교해, 이세민이 최종적인 승자가 된 요인을, 관롱집단을 맹주로 한 산동호걸집단과의 동맹을 성립시킨 것에 구했다. 단 이금숙씨는, 이세민과 산동호걸집단이 연결된 경위, 이유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가, 하는 의문을 남겼다.

그리고, 이상의 제 연구의 위에 서서, 근년, 주목해야 할 성과를 거둔 것이, 야마시타 쇼우시 씨였다. 그는, 진인각 씨 이래의 현무문의 변 연구는, 이 사건을 관롱집단 내의 권력투쟁으로 위치시켜, 정권 구조의 질적 변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다시 이세민 집단 중의 산동세력에 대해 분석을 더했다.

야마시타 씨는, 현무문의 변에서 이세민에게 가담한 인물을, 정사, 석각사료 등으로부터 19명 추출했다. 그 중 산동출신자(북제계인사를 포함) 12명에 오른 것으로부터, 이 사건에 있어 산동세력의 중요성을 재인식했다. 그 위에, 이세민집단의 산동출시낮에는, 태종조의 명재상 방현령을 시작으로 하여, 제수유역의 출신자가 많은 것, 그들이 일정한 집단성으로써, 이세민의 막부에 가담했던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방현령의 일족=청하 방씨의 계도를, 문헌사료 석각사료로부터 재현해, 방씨 대대의 제수유역의 지방관의 임관 상황을 보인 위에, 방씨가 제수 유역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을 규명했다. 그리고 방현령이 매개가 되어, 이세민 집단에 제수 유역의 인사를 결집시킨 것을 추정했다. 또 산동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이세민 집단과 태원 원종을 중심으로 하여, 관중 12군을 기반에 둔 이연 집단의 질적 차이를 논하고, 현무문의 변을 관롱집단 내의 권력투쟁으로 하는 이해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시켰다. 단 야마시타 씨는, 이세민 집단이 산동을, 이연 집단이 관롱(관중 12)을 기반으로 했다고 하나, 이는 곧 관롱과 산동의 대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하여, 현무문의 변에 그 도식을 적용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의 선행 연구에서는, 누노메 씨의 견해를 빼고, 이세민의 배후세력에 있어 북제계 인사의 중요성이 재삼에 걸쳐 강조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야마시타 씨는 12명의 북제계 인사를 상세히 분석해, 그 존재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단 거기에서는, 재상이 된 방현령과 고사렴을 빼고는, 모두 무인계로, 정관시대에 정치의 중추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지적된다. 그리고 그 무인계의 사람들은, 진인각 이금숙 양자가 착목한 산동호걸의 멤버가 거의 포괄되어 있다. 만약 태종 정권의 중핵을, 이세민집단에서 찾는다면, 정관시대의 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한 문인관료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될 것이다. 거기에 더해, 누노메 씨의 고증에 입각하는 것만으로도, 방현령과 고사렴 이외에도, 북제계 인사를 다수 드는 것이 가능하다. 야마시타 씨는 이세민 집단 내의 북제계 인사의 전체 상에까지, 고찰을 미치게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러면, 이세민 집단의 북제계 인사 그룹은, 어떤 유대로 연결되어 있던 것일까. 이에 관해 선행연구는, 진씨나 야마시타 씨가, 이세민 집단의 북제계 인사를 산동집단으로 칭한 것과 같이, 지연적 유대를 중시해 왓다. 지연이 유대였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으나, 더욱 구체적으로 북제계 인사 간을 연결한 것은, 인간관계에까지 파고든 고찰이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관계를 아는 것으로, 이세민 집단의 형성 과정의 해명이 되는 것은 아닐까.

또 선행연구에서는, 이세민이 산동에 지반을 구축하기 위해, 북제계 인사를 적극적으로 등용한 것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한편의 북제계 인사의 측에 서서, 그들이 어떤 동기(정치적 목적), 이세민과 연결했는가 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선행연구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본고에서는 상기의 점을 밝히기 위해, 이세민 집단에 있어 북제계 인사 간의 인간관계를, 구체적으로 혼인, 교제관계를 정리하고, 그것을 통해, 이세민과 연결한 정치적 목적은 무엇이었는가를 고찰해, 태종 정권을 해명하는 데에 일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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