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唐書 卷151-2 伊慎傳 書案

兗州人善騎射為果毅喪母將營合祔不識其父之墓晝夜號哭未浹日夢寐有指導焉遂發壟果得舊記驗

이신은, 연주 사람이다. 기사를 잘했고, 처음에 과의가 되었다. 모친을 잃고, 장차 합부(합사, 합장)하기로 계획했는데, 그 부친의 묘를 알 수 없었따. 주야로 호곡하여, 열흘이 안 되었는데, 꿈에 가리켜 이끌어주는 것이 있었다. 마침내 밭두렁을 들추어 보니, 과연 예전의 기험(기록되어 증험, 검증할 수 있는 물건)을 얻었다.

 

大歷八年江西節度使路嗣恭討嶺南哥舒晃之亂慎為先鋒直逼賊壘疾戰破之斬首三千級由是復始興之地未幾與諸將追斬晃於泔溪函首獻於闕下嗣恭表慎功授連州長史知當州團練副使三遷江州別駕

대력 8, 강서절도사 노사공이 영남의 가서황의 난을 토벌하는데, 이신을 선봉으로 하여, 곧바로 적의 성루에 육박해, 급히 싸워 그들을 깨뜨리고, 3천 급을 참수해, 이로 말미암아 시흥의 땅을 수복했다. 얼마 안 되어, 제장과 더불어 가서황을 감계에서 추급해 참하고, 수급을 함에 담아 궐하에 바쳤다. 노사공이 이신의 공을 상표해, 연주자사를 배수하고, 당주 단련부사를 지직했으며, 세 번 옮겨 강주별가가 되었다.

 

討梁崇義之歲慎以江西牙將從李希烈摧鋒陷敵功又居多江漢既平希烈愛慎之材數遺善馬意欲縻之慎以計遁歸命本道明年希烈果反嗣曹王臯始至鐘陵大集將吏慎而壯之大集兵將繕理舟師希烈懼慎為曹王所任慎七屬之甲為慎書行間焉上遣中使即軍以詰之曹王乃抗疏論雪上章未報會賊兵溯江來寇曹王乃召慎勉之令戰大破三千余眾朝廷始信其不貳累破蔡山柵取蘄州降其將李良又攻黃梅縣殺賊將韓霜露斬首千余級優詔褒異授試太子詹事封南充郡王又兼禦史中丞蘄州刺史充節度都知兵馬使

양숭의를 토벌한 해에, 이신이 강서의 아장으로써 이희열을 따라, 예봉을 꺾고 적을 함락시켜, 공이 또 많았다. 강한이 이미 평정되자, 이희열이 이신의 재능을 아껴, 여러 차례 좋은 말을 보내고, 그를 매어두려 뜻하였는데, 이신이 꾸민 것을 알고 달아나, 본도로 귀명했다. 다음해, 이희열이 과연 반변했다. 사조왕 이고가 처음에 종릉에 이르러, 크게 장리를 모았는데, 이신을 얻어 그를 장하게 여겼다. 병사와 장수들을 크게 모으고, 주사를 선리(수리)했다. 이희열이 이신이 조왕이 임직시킨 바가 된 것을 두려워하여, 이신에게 7속의 갑주를 보내고, 거짓으로 이신에게 서한으로 행간의 내용을 전했다. 황제가 중사를 군대에 보내 그를 힐문하게 하자, 조왕이 이에 항소하여 혐의를 씻어주는 것을 논했다. 올린 서장이 아직 회보되지 않았는데, 적병이 강을 거슬러 올라와 와서 구략해, 조왕이 이에 이신을 불러 그에게 권해 싸우도록 영하여, 3천여 무리를 대파하니, 조정이 비로소 그가 두 마음이 없음을 믿었다. 거듭하여 채산책을 깨뜨리고, 기주를 취했으며, 그 장수 이량을 항복시켰다. 또 황해현을 공격해, 적장 한상로를 죽이고, 천여 급을 참수했다. 우조로 남다른 공을 기리고, 시태자첨사를 배수시켰으며, 남충군왕에 봉하고, 또 어사중승, 기주자사를 겸하게 했으며, 절도도지병마사에 충임했다.

 

建中末車駕在梁鹽鐵使包佶以金幣溯江將進獻次於蘄口時賊已屠汴州遣驍將杜少誠將步騎萬余來寇黃梅絕江道慎兵七千遇於永安戍慎列樹三柵相去數裏偃旗臥鼓於中柵聲鼓三柵悉兵以擊賊軍大亂少誠脫身以免斬級不可勝數江路遂通又破茍莽柵進兵圍安州賊阻涢水攻之不能下希烈遣其甥劉戒虛將騎八千來援慎分兵迎擊戰於應山擒戒虛縛示城下遂開門請罪以功拜安州刺史兼禦史大夫仍賜實封一百戶希烈又遣將援隋州慎擊之於厲鄉走康叔夜斬首五千級希烈死李惠登為賊守隋州慎飛書招諭惠登遂以城降因密奏惠登可用詔授隋州刺史

건중 말, 거가가 양, 양에 있으며, 염철사 포길이 금폐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 장차 진헌하고자 하며, 기구로 갔다. 이때 적이 이미 변주를 도륙해, 효장 두소성을 보내 보기 1만여 명을 지휘해 황해에 와서 구략하게 하고, 그로써 장강의 수로를 끊었다. 이신의 병력은 7천명이었는데, 영안수에서 조우했다. 이신이 3개의 방책을 나란히 세우고, 서로 거리를 몇 리로 하며, 기를 기울여 두고 북을 뉘어 두었다. 가운데의 목책에서 북을 울리자, 세 목책에서 모든 병력으로 공격해, 적군이 크게 어지러웠고, 두소성이 몸을 빼쳐 면했으며, 참급한 것이 세는 것을 이기지 못했고, 강로가 드디어 통하게 되었다. 또 극망책을 깨뜨리고, 진병시켜 안주를 포위했다. 적도들이 운수를 막아, 그들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킬 수 없었다. 이희열이 그 생질 유계허를 보내 기병 8천을 지휘해 내원하게 했는데, 이신이 병력을 나누어 영격하고, 응산에서 싸워, 유계허를 사로잡고, 묶어서 성 아래에 보이니, 마침내 문을 열고 죄를 청했다. 공으로 안주자사, 겸어사대부를 배수하고, 이어서 실봉 1백 호를 하사받았다. 이희열이 또 장수를 보내 수주를 구원하려 했는데, 이신이 그를 여향에서 쳐서, 강을 숙야(이틀 밤) 동안 달아나게 하고, 참수한 것이 5천 급이었다. 이희열이 죽자, 이혜등이 적을 위해 수주를 지키게 되었는데, 이신이 비서(화살에 매단 서한)로 초유하여, 이혜등이 마침내 성으로 항복했다. 인하여 밀주해 이혜등을 쓸 수 있다고 하여, 조서로 수주자사를 제수했다.

 

貞元十五年慎為安黃等州節度管內支度營田觀察等使十六年吳少誠阻命詔以本道步騎五千兼統荊南湖南江西三道兵當其一面於申州城南前後破賊數千以例加檢校刑部尚書二十一年於安黃置奉義軍額為奉義軍節度使檢校右仆射憲宗即位真拜右仆射元和二年轉檢校左仆射兼右金吾衛大將軍以賂第五從直求鎮河中為從直所奏貶右衛將軍數月為檢校尚書右仆射兼右衛上將軍元和六年卒年六十八贈太子太保

정원 15, 이신이 안황등주절도, 관내지탁영전관찰등사가 되었다. 16, 오소성이 조명을 저애해, 조서로 본도의 보기 5천으로, 형남, 호남, 강서 3도의 병력을 겸하여 통령해, 한 방면을 당하도록 했다. 신주성 남쪽에서 전후로 적을 깨뜨린 것이 수천이었고, 구례로 검교형부상서를 더했다. 21, 안황에 봉의군의 병액을 설치하고, 봉의군절도사, 검교좌복야가 되었다. 헌종이 즉위하자, 입조해 좌복야를 배수했다. 원화 2, 검교좌복야, 겸우금오위대장군으로 전보되었다. 제오종직이 뇌물로써 하중에서 진수하기를 구했는데, 제오종직이 주서한 바가 되어, 우위장군으로 폄적되었다. 수개월 후, 다시 검교상서우복야, 겸우위상장군이 되었다. 원화 6년 졸했고, 88세였으며, 태자태보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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