杜希全,京兆醴泉人也。少從軍,嘗為郭尚父子儀裨將,積功至朔方軍節度使;軍令嚴肅,士卒皆悅服。初,德宗居奉天,希全首將所部與鹽州刺史戴休顏、夏州刺史時常春合兵赴難。軍已次漠谷,為賊泚邀擊,乘高縱礧,又以大弩射之,傷者眾。德宗令出兵援之,不得進;希全退次邠州。以赴難功,加檢校戶部尚書、行在都知兵馬使。從幸梁州。帝還京師,遷太子少師、檢校右仆射,兼靈州大都督、禦史大夫、受降定遠城天德軍,靈鹽豐夏等州節度支度營田觀察押蕃落等使、余姚郡王。-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두희전은, 경조 예천 사람이다. 젊어서 종군하여, 일찍이 곽상보 자의{곽자의}의 비장이 되었고, 공을 쌓아 삭방군절도사에 이르렀으며; 군령이 엄숙하고, 사졸들이 모두 즐거이 복종했다. 처음에, 덕종이 봉천에 있으면서, 두희전이 처음으로 거느린 바를 지휘해 염주자사 대휴안, 하주자사 시상춘과 더불어 병력을 합쳐 위난에 달려왔다. 군대가 이미 막곡으로 나아가자, 참적 주자가 요격한 것이 되어, 높은 곳을 타고 바위를 굴리고, 또 큰 노로 그들을 쏘니, 다친 자들이 많았다. 덕종이 병력을 내보내 그들을 구원하게 했으나, 나아갈 수 없어; 두희전이 물러나 빈주로 갔다. 위난에 달려온 공으로, 검교호부상서, 행재도지병마사를 더했다. 행행을 따라 양주로 갔다. 황제가 경사로 돌아오자, 태자소사, 검교우복야, 겸영주대도독, 어사대부, 수항정원성천덕군, 영 염 풍 하 등주절도지탁영전관찰압번락등사, 여요군왕으로 옮겼다.
希全將赴靈州,當獻《體要》八章,多所規諫。德宗深納之,乃著《君臣箴》以賜之,其辭曰:
두희전이 장차 영주로 가면서, 마침 <체요> 8장을 올렸는데, 규간한 바가 많았다. 덕종이 심히 그것을 채납하고, 이에 <군신잠>을 지어 그에게 하사했는데, 그 글에서 말했다 :
夫惟德惠人,惟辟奉天,從諫則聖,共理惟賢。皇立有極,駿命不易,總萬機以成務,齊六合之殊致。一心不能獨鑒,一目不能周視,敷求哲人,式序在位。於戲!君之任臣,必求一德;臣之事君,鹹思正直。何啟沃之所宜,自古今而未得?且以讜言者逆耳,讒諛者伺側,故下情未通,而上聽已惑;俾夫忠賢,敗於兇慝。譬彼輕舟,烝徒楫之;亦有和羹,宰夫膳之。孰雲理國,不自得師,覆車之軌,予其懲而。高以下升,和由甘受,惟君無良,亦臣之咎。聞諸辛毗,牽裾魏後,則有禽息,竭忠碎首,勉思獻替,以平可否。勿謂無傷,自微而彰;勿謂何害,積小成大。事有隱而必見,令既出而焉悔!鼓鐘在宮,聲聞於外,浩然涉水,朕未有艾。將負扆以虛心,期盡忠而納誨。在昔稷、契,實匡舜、禹;近茲魏徵,佑我文祖,君臣協德,混一區宇。肆予寡昧,獲纘丕緒,臣哉鄰哉,爾翼爾輔。
무릇 사람들에게 덕혜(덕과 은혜를 베풂)하고, 하늘을 피하고 받들며, 간하는 것을 따르면 곧 성인이니, 현철과 치리를 함께하는 것이다. 황제가 세워져 지극한 지위가 있으면, 준명(대명, 제왕의 명)은 바꿀 수 없고, 만기를 총람하여 공무를 이루니, 육합(천하)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 수치(다른 것과 다름, 일치하지 않음, 특별한 경지)함이다. 한 마음으로는 홀로 살필 수 없고, 한 눈으로는 널리 볼 수 없으니, 두루 철인을 구하여, 계서를 따라 지위에 있게 한다. 아아! 인군이 신료에게 맡기는 것은, 반드시 한 덕을 구하는 것이고; 신하가 인군을 섬기는 것은, 모두 바르고 곧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계옥(계도하여 군왕을 보좌함)함의 의당한 바가, 고금 이래로 아직 얻어질 수 없었는가? 또 당언(곧은 말, 직언)이 귀를 거스르고, 참소하고 아첨하는 것이 가까이를 엿보면, 고로 아래의 뜻이 통하지 않고, 위에서 듣고는 의혹하게 되니; 대저 충성스럽고 어진 자들을 사역하더라도, 흉특한 자들에게 실패하게 된다. 저것을 가벼운 배에 비유하자면, 증도(백성들)들이 그것을 젓고; 또 화갱(서로 다르고 조화되지 않은 재료들을 써서 국/탕을 끓임, 재보/재상의 직임을 의미)이 있다고 한다면, 재부(요리사 / 천관 총재의 속관)가 그것을 요리한다. 누군가 이국(치국, 피휘 때문에 治를 理로 씀)한다면서, 스스로 스승을 얻지 못하면, 수레가 엎어진 궤적(실패로부터의 교훈)이, 미리 그 징험이 있게 되는 것이다. 높은 사람은 아랫사람이 진헌하는 것으로써 하여, 조화로움이 달게 받는 것으로부터 말미암으니, 인군에게 좋음이 없으면, 또한 신하의 허물인 것이다. 듣기로 신비는, 위후(문제 조비를 말함)를 견거(옷자락을 잡아당겨 간곡히 간함, 문제가 기주의 10만 호를 하남으로 사천시키려 하자 신비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극간해 5만 호로 줄임)했으니, 곧 금식(헛되이 작록만 받고 세간에 무익함)한 자가 있다면, 충의를 다하고 머리를 부수며, 힘써 생각하고 헌체(의견을 진헌하고 간함)하여야, 그로써 가부를 정할 것이다. 다칠 것이 없음을 말하지 말면, 미약한 것으로부터 창대해질 것이고; 어떤 해함이 있는지 말하지 말면, 훈적은 작아도 이룬 것은 클 것이다. 일이 숨겨진 바 있어도 필시 보이게 되니, 이미 내어놓게 하면 어찌 뉘우치겠는가! 북과 종이 궁에 있어도, 소리는 밖에서 들리니, 호연히 물을 건너도, 짐은 아직 다함이 있지 않다. 장차 빈 마음으로써 부의(병풍을 등 뒤에 두는 것, 황제가 임조하여 정사를 듣는 것)하더라도, 충심을 다하여 가르침을 채납할 것을 기약하노라. 옛 후직, 설,에게는, 실로 광정한 우, 순이 있었고; 가까이 위징이, 우리 문조(태종)을 도와, 군신이 덕을 합하여, 구우(천하)를 혼일(하나로 함)했다. 드디어 내가 과매(사리에 밝지 못함, 겸사)한데, 비서(국가 대업)를 잇는 것을 당하였으니, 신하들은 보필하는 자들일진저, 익보(보좌, 광정함)해 달라.
高秋始肅,我武惟揚,輟此禁衛,殿於大邦。戀闕方甚,嘉言乃昌,是規是諫,金玉其相。辭高理要,入德知方,總彼千慮,備於八章,宣父有言,啟予者商。殷有盤銘,周有欹器,或誡以辭,或警以事。披圖演義,發於爾誌,與金鏡而高懸,將座右而同置。人皆有初,鮮慎厥終,汝其夙夜,期保朕躬。無曰爾身在外,而爾誠不通,一言之應,千裏攸同。導彼遐徐,達余四聰,華夷仰德,時乃之功。既往既來,懷賢忡忡,唱予和汝,式示深衷。
고추(하늘이 높은 가을)에 비로소 숙연해지나니, 우리의 무위를 날려, 이를 금위에 그치게 하고, 대방을 평정한다. 연궐(궁궐을 그림, 인주를 그리워하고 잊지 않음)함이 바야흐로 깊으니, 미쁜 말이 이에 창성하고, 규간함이, 금과 옥이 그 함께하는 바이다. 언사가 이요(치리의 요점)를 높이고 있고, 입덕(품덕을 수양하여 성인의 경지에 들어감)하고 지방(예법을 앎 / 정확히 행해야 할 바를 앎)하여, 그 천 가지의 생각을 모으고, 여덟 장에 갖추어 놓았으니, 선부(공자, 개원 27년 문선왕으로 추서됨)께서 말씀이 있었을진저, 나를 깨우치는 것은 상(은상)이니라. 은에는 반명(세수하는 대야에 새겨놓은 경구, 탕왕의 고사)이 있었고, 주에는 의기(담긴 물의 양이 적으면 기울고, 많으면 엎어지고, 맞아야만 바로 서 있는 기기. 인주의 앉는 자리 오른쪽에 두어 경계로 삼음)가 있었으니, 혹은 언사로 깨우치게 하고, 혹은 일로 경계하게 했다. 자못 연의(의리/고사의 연고를 천발(설명, 해명)함)함을 꾀하여, 그 기록한 것에서 발했으니, 금경과 더불어 높이 걸어두어, 장차 자리 오른쪽에 놓아 함께 둘 것이다. 사람은 모두 그 처음이 있으면서, 그 마지막에 삼가는 것은 드무니, 네가 그 숙야(밤낮)를 보낸 것은, 짐궁(황제 자신)을 보필하기를 바란 것이겠다. 네 몸이 밖에 있다고 해서, 네 성의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 것이니, 한 마디에 응하는 것은, 천 리에서도 같은 바이다. 멀고 조용함으로 저들을 이끌어, 내가 사총(멀리 사방으로부터 들음, 《書·舜典》:“明四目,達四聰。”)에 이르게 하니, 화이가 덕을 우러르는데, 바야흐로 네 공이다. 이미 오가며, 네(현)가 근심하는 바를 위로했으니, 나와 네가 창화(음률을 맞추듯 조화됨, 화합)하여, 심충(내심, 충정)을 드러내 보이는도다.
尋兼本管及夏綏節度都統,加太子少師。希全以鹽州地當要害,自貞元三年西蕃劫盟之後,州城陷虜;自是塞外無保障,靈武勢隔,西通鄜坊,甚為邊患,朝議是之。九年,詔曰:
이윽고 본관 및 하수절도도통을 겸하고 태자소사를 더했다. 두희전이 염주의 땅이 요해에 맞는 것으로, 정원 3년 서번(토번)이 겁맹(평량겁맹)한 이후부터, 주성이 노적들에게 함락되어; 이로부터 새외에 보장(성보/성장)이 없으니, 영무의 세가 멀어지고, 서쪽으로 부방(부주-방주)과 통하여, 심히 변우의 우려가 된다고 하니, 조의가 그렇다고 여겼다. 9년, 조서로 말했다 :
設險守國,《易象》垂文,有備無患,先王令典。況修復舊制,安固疆裏,偃甲息人,必在於此。
험요를 배설해 나라를 지키는 것은, <역상>에 수문(문장이 전함, 유전해 옴)하기를, 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 했으니, 선왕의 영전(좋은 헌장, 법령)이다. 황차 옛 제도를 수복하고, 강리를 평안하게 하고 굳혀, 언갑(갑주를 쉬게 함)하고 사람을 쉬게 하는 것이, 반드시 여기에 있음에야.
鹽州地當沖要,遠介朔陲,東達銀夏,西援靈武,密邇延慶,保扞王畿。乃者城池失守,制備無據,千裏庭障,烽燧不接,三隅要害,役戍其勤。若非興集師徒,繕修壁壘,設攻守之具,務耕戰之方,則封內多虞,諸華屢警,由中及外,皆靡寧居。深惟永圖,豈忘終食!顧以薄德,至化未孚,既不能復前古之治,致四夷之守,與其臨事而重擾,豈若先備而即安!是用弘久遠之謀,修五原之壘,使邊城有守,中夏克寧,不有暫勞,安能永逸?
염주의 땅은 요충에 맞아서, 멀리 삭방의 변방을 끼고 있고, 동쪽으로는 은하(은주-하주)에 달하며, 서쪽으로는 영무를 돕고, 연경에 밀이(가까움)하며, 왕기를 보한(지키고 막음)한다. 내자(가까운 시기)에 성지가 지키는 것을 잃어, 제비(제작하고 비축함)함이 근거를 잃었고, 천 리의 정장(亭障, 변새의 보루, 보장/성장)이, 봉수가 접해지지 않았으며, 세 변의 요해지가, 수졸들을 사역하여 그 수고로움이 있었다. 만약 군대 무리를 일으켜 모으고, 벽루를 수선하며, 공수의 기구를 설비하고, 경전(농경과 전쟁)의 방도에 힘쓰지 않는다면, 곧 봉내(강역 내)에 우환이 많을 것이고, 제화가 거듭하여 경계해, 그로 말미암아 중외가, 모두 안녕하게 거하지 못할 것이다. 깊이 영구한 계책을 생각건대, 어찌 종식지간(식사를 끝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매우 짧은 시간)이라고 잊겠는가! 박덕(엷은 덕, 겸사)으로 되돌아보매, 교화를 지극히 하는 것은 미부(아직 이루어지지 못함)하니, 이미 이전 옛 치리를 되돌릴 수 없어, 사이의 방비함을 지극히 하여, 그와 더불어 일에 임해 중요(어지러움을 더함, 새로운 우환이 늘어남)하게 되면, 어찌 먼저 대비하여 곧 안녕하게 되는 것과 같겠는가! 이로써 오래도록 멀리까지 유효한 계모를 넓히고, 오원의 성루를 수축하며, 변새의 성에 지키는 것이 있도록 하면, 중하가 지극히 안녕해져, 잠시의 수고도 없게 될 것이니, 어찌 능히 영구히 편안하지 않겠는가?
宜令左右神策及朔方河中絳邠寧慶兵馬副元帥渾瑊、朔方靈鹽豐夏綏銀節度都統杜希全、邠寧節度使張獻甫、神策行營節度使邢君牙、銀夏節度使韓潭、鄜坊節度使王棲曜、振武節度使範希朝,各於所部簡練將士,令三萬五千人同赴鹽州。神策將軍張昌宜權知鹽州事,應板築雜役,取六千人充。其鹽州防秋將士,率三年滿更代,仍委杜彥先具名奏聞,悉與改轉。
의당 좌우신책 및 삭방 하중 강 빈녕 경 병마부원수 혼감, 삭방 영 염 풍 하 수 은 절도도통 두희전, 빈녕절도사 장헌보, 신책행영절도사 형군아, 은하절도사 한담, 부방절도사 왕서요, 진무절도사 범희조는, 각각 거느린 바에서 장사를 간련(뽑아 훈련시킴)하여, 3만 5천명을 영솔해 함께 염주로 가라. 신책장군 장창은 의당 권지염주사로, 판축의 잡역에 응하고, 6천 명을 취하여 충원하라. 그 염주의 방추하는 장사들은, 3년을 채우면 경대(교대함)하고, 이어서 두안선에게 위임하여 이름을 갖추어 주문케 하여, 모두 더불어 개전(관위를 옮겨 전보됨)되도록 하라.
朕情非己欲,誌在靖人。咨爾將相之臣,忠良之士,輸誠奉命,陳力忘憂,勉茂功勛,永安疆場。必集兵事,實惟眾心,各相率勵,以副朕誌。
짐의 뜻은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니고, 뜻은 인인들을 평안히 하려는 데에 있다. 너희 장상인 신하들과, 충량한 사인들과 꾀하니, 수성(성심을 실어옴, 바침)하여 명을 받들고, 힘을 펼쳐 우환을 잊으며, 면려하여 공훈을 무성하게 하고, 강장을 영구히 평안하게 하자. 병사를 이루는 것은 반드시, 실로 오로지 무리의 마음이니, 각각 서로 이끌고 힘써, 그로써 짐의 뜻을 도우라.
凡役六千人,二旬而畢。時將板築,仍詔涇原、劍南、山南諸軍深討吐蕃以牽制之,由是板築之時,虜不及犯塞。城畢,中外稱賀。由是靈武、銀夏、河西稍安,虜不敢深入。
무릇 6천 명을 사역하여, 20일이 지나 마쳤다. 이때 장차 판축하려 하여, 이어서 경원, 검남, 산남의 여러 군대에 조서로 깊이 들어가 토번을 쳐서 견제하도록 하여, 이로 말미암아 판축할 때에는, 노적들이 변새를 범하는 데에 미치지 못했다. 성이 완성되자, 중외에서 칭하했다. 이로 말미암아 영무, 은하, 하서는 점점 평안해졌고, 노적들이 감히 깊이 들어오지 못했다.
希全久鎮河西,晚節倚邊多恣橫,帝嘗寬之。豐州剌史李景略威名出其右,希全深忌之,疑畏代己,乃誣奏景略;德宗不得已為貶之。素病風眩,暴戾益甚。判官監察禦史李起頗忤之,希全又誣奏殺之。將吏皆重足脅息。貞元十年正月卒,廢朝三日,贈司空。
두희전은 오래 하서를 진수하면서, 만절(만년)에는 변상에 의거해 많이 자횡(자만하고 횡포함)하였지만, 황제가 일찍이 그를 관대하게 대했다. 풍주자사 이경략의 위명이 그 미하에서 드러나자, 두희전이 깊이 그를 시기하고, 자신을 대신하게 할까 의심하고 두려워해, 이에 이경략을 무주(참훼하는 주서를 올림)하니; 덕종이 부득이하여 그를 폄적시켰다. 평소 풍현(간질발작? 현기증)을 앓아, 갑자기 성내는 것이 더욱 심했다. 판관인 감찰어사 이기가 자못 그를 거슬러, 두희전이 또 무주하여 그를 죽였다. 장리가 모두 중족(다리가 갈마듦, 비상히 두려워하는 모습)하고 협식(숨을 움츠림, 숨을 죽임, 두려워하는 모양)했다. 정원 10년 정월 졸했는데, 3일간 폐조하고, 사공을 추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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