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唐書 卷144-8 杜希全傳 書案

杜希全京兆醴泉人也少從軍為郭尚父子儀裨將積功至朔方軍節度使軍令嚴肅士卒皆悅服德宗居奉天希全首將所部與鹽州刺史戴休夏州刺史時常春合兵赴難軍已次漠谷為賊泚邀擊乘高縱礧又以大弩射之傷者眾德宗令出兵援之不得進希全退次邠州以赴難功加檢校戶部尚書行在都知兵馬使從幸梁州帝還京師遷太子少師檢校右仆射兼靈州大都督禦史大夫受降定遠城天德軍靈鹽豐夏等州節度支度營田觀察押蕃落等使余姚郡王

두희전은, 경조 예천 사람이다. 젊어서 종군하여, 일찍이 곽상보 자의{곽자의}의 비장이 되었고, 공을 쌓아 삭방군절도사에 이르렀으며; 군령이 엄숙하고, 사졸들이 모두 즐거이 복종했다. 처음에, 덕종이 봉천에 있으면서, 두희전이 처음으로 거느린 바를 지휘해 염주자사 대휴안, 하주자사 시상춘과 더불어 병력을 합쳐 위난에 달려왔다. 군대가 이미 막곡으로 나아가자, 참적 주자가 요격한 것이 되어, 높은 곳을 타고 바위를 굴리고, 또 큰 노로 그들을 쏘니, 다친 자들이 많았다. 덕종이 병력을 내보내 그들을 구원하게 했으나, 나아갈 수 없어; 두희전이 물러나 빈주로 갔다. 위난에 달려온 공으로, 검교호부상서, 행재도지병마사를 더했다. 행행을 따라 양주로 갔다. 황제가 경사로 돌아오자, 태자소사, 검교우복야, 겸영주대도독, 어사대부, 수항정원성천덕군, 영 염 풍 하 등주절도지탁영전관찰압번락등사, 여요군왕으로 옮겼다.

 

希全將赴靈州當獻體要八章多所規諫德宗深納之乃著君臣箴以賜之其辭曰

두희전이 장차 영주로 가면서, 마침 <체요> 8장을 올렸는데, 규간한 바가 많았다. 덕종이 심히 그것을 채납하고, 이에 <군신잠>을 지어 그에게 하사했는데, 그 글에서 말했다 :

 

夫惟德惠人惟辟奉天從諫則聖共理惟賢皇立有極駿命不易總萬機以成務齊六合之殊致一心不能獨鑒一目不能周視敷求哲人式序在位於戲君之任臣必求一德臣之事君鹹思正直啟沃之所宜自古今而未得且以讜言者逆耳讒諛者伺側故下情未通而上聽已惑俾夫忠賢敗於兇慝譬彼輕舟烝徒楫之亦有和羹宰夫膳之孰雲理國不自得師覆車之軌予其懲而高以下升和由甘受惟君無良亦臣之咎聞諸辛毗牽裾魏後則有禽息竭忠碎首勉思獻替以平可否勿謂無傷自微而彰勿謂何害積小成大事有隱而必見既出而焉悔鼓鐘在宮聲聞於外浩然涉水朕未有艾將負扆以虛心期盡忠而納誨在昔稷實匡舜近茲魏徵佑我文祖君臣協德混一區宇肆予寡昧獲纘丕臣哉鄰哉爾翼爾輔

무릇 사람들에게 덕혜(덕과 은혜를 베풂)하고, 하늘을 피하고 받들며, 간하는 것을 따르면 곧 성인이니, 현철과 치리를 함께하는 것이다. 황제가 세워져 지극한 지위가 있으면, 준명(대명, 제왕의 명)은 바꿀 수 없고, 만기를 총람하여 공무를 이루니, 육합(천하)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 수치(다른 것과 다름, 일치하지 않음, 특별한 경지)함이다. 한 마음으로는 홀로 살필 수 없고, 한 눈으로는 널리 볼 수 없으니, 두루 철인을 구하여, 계서를 따라 지위에 있게 한다. 아아! 인군이 신료에게 맡기는 것은, 반드시 한 덕을 구하는 것이고; 신하가 인군을 섬기는 것은, 모두 바르고 곧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계옥(계도하여 군왕을 보좌함)함의 의당한 바가, 고금 이래로 아직 얻어질 수 없었는가? 또 당언(곧은 말, 직언)이 귀를 거스르고, 참소하고 아첨하는 것이 가까이를 엿보면, 고로 아래의 뜻이 통하지 않고, 위에서 듣고는 의혹하게 되니; 대저 충성스럽고 어진 자들을 사역하더라도, 흉특한 자들에게 실패하게 된다. 저것을 가벼운 배에 비유하자면, 증도(백성들)들이 그것을 젓고; 또 화갱(서로 다르고 조화되지 않은 재료들을 써서 국/탕을 끓임, 재보/재상의 직임을 의미)이 있다고 한다면, 재부(요리사 / 천관 총재의 속관)가 그것을 요리한다. 누군가 이국(치국, 피휘 때문에 )한다면서, 스스로 스승을 얻지 못하면, 수레가 엎어진 궤적(실패로부터의 교훈), 미리 그 징험이 있게 되는 것이다. 높은 사람은 아랫사람이 진헌하는 것으로써 하여, 조화로움이 달게 받는 것으로부터 말미암으니, 인군에게 좋음이 없으면, 또한 신하의 허물인 것이다. 듣기로 신비는, 위후(문제 조비를 말함)를 견거(옷자락을 잡아당겨 간곡히 간함, 문제가 기주의 10만 호를 하남으로 사천시키려 하자 신비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극간해 5만 호로 줄임)했으니, 곧 금식(헛되이 작록만 받고 세간에 무익함)한 자가 있다면, 충의를 다하고 머리를 부수며, 힘써 생각하고 헌체(의견을 진헌하고 간함)하여야, 그로써 가부를 정할 것이다. 다칠 것이 없음을 말하지 말면, 미약한 것으로부터 창대해질 것이고; 어떤 해함이 있는지 말하지 말면, 훈적은 작아도 이룬 것은 클 것이다. 일이 숨겨진 바 있어도 필시 보이게 되니, 이미 내어놓게 하면 어찌 뉘우치겠는가! 북과 종이 궁에 있어도, 소리는 밖에서 들리니, 호연히 물을 건너도, 짐은 아직 다함이 있지 않다. 장차 빈 마음으로써 부의(병풍을 등 뒤에 두는 것, 황제가 임조하여 정사를 듣는 것)하더라도, 충심을 다하여 가르침을 채납할 것을 기약하노라. 옛 후직, ,에게는, 실로 광정한 우, 순이 있었고; 가까이 위징이, 우리 문조(태종)을 도와, 군신이 덕을 합하여, 구우(천하)를 혼일(하나로 함)했다. 드디어 내가 과매(사리에 밝지 못함, 겸사)한데, 비서(국가 대업)를 잇는 것을 당하였으니, 신하들은 보필하는 자들일진저, 익보(보좌, 광정함)해 달라.

 

高秋始肅我武惟揚輟此禁衛殿於大邦戀闕方甚嘉言乃昌是規是諫金玉其相辭高理要入德知方總彼千慮備於八章宣父有言啟予者商殷有盤銘周有欹器或誡以辭或警以事披圖演義發於爾誌與金鏡而高懸將座右而同置人皆有初慎厥終汝其夙夜期保朕躬無曰爾身在外而爾誠不通一言之應千裏攸同導彼遐徐達余四聰華夷仰德時乃之功既往既來懷賢忡忡唱予和汝式示深衷

고추(하늘이 높은 가을)에 비로소 숙연해지나니, 우리의 무위를 날려, 이를 금위에 그치게 하고, 대방을 평정한다. 연궐(궁궐을 그림, 인주를 그리워하고 잊지 않음)함이 바야흐로 깊으니, 미쁜 말이 이에 창성하고, 규간함이, 금과 옥이 그 함께하는 바이다. 언사가 이요(치리의 요점)를 높이고 있고, 입덕(품덕을 수양하여 성인의 경지에 들어감)하고 지방(예법을 앎 / 정확히 행해야 할 바를 앎)하여, 그 천 가지의 생각을 모으고, 여덟 장에 갖추어 놓았으니, 선부(공자, 개원 27년 문선왕으로 추서됨)께서 말씀이 있었을진저, 나를 깨우치는 것은 상(은상)이니라. 은에는 반명(세수하는 대야에 새겨놓은 경구, 탕왕의 고사)이 있었고, 주에는 의기(담긴 물의 양이 적으면 기울고, 많으면 엎어지고, 맞아야만 바로 서 있는 기기. 인주의 앉는 자리 오른쪽에 두어 경계로 삼음)가 있었으니, 혹은 언사로 깨우치게 하고, 혹은 일로 경계하게 했다. 자못 연의(의리/고사의 연고를 천발(설명, 해명))함을 꾀하여, 그 기록한 것에서 발했으니, 금경과 더불어 높이 걸어두어, 장차 자리 오른쪽에 놓아 함께 둘 것이다. 사람은 모두 그 처음이 있으면서, 그 마지막에 삼가는 것은 드무니, 네가 그 숙야(밤낮)를 보낸 것은, 짐궁(황제 자신)을 보필하기를 바란 것이겠다. 네 몸이 밖에 있다고 해서, 네 성의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 것이니, 한 마디에 응하는 것은, 천 리에서도 같은 바이다. 멀고 조용함으로 저들을 이끌어, 내가 사총(멀리 사방으로부터 들음, ·舜典》:明四目達四聰。”)에 이르게 하니, 화이가 덕을 우러르는데, 바야흐로 네 공이다. 이미 오가며, ()가 근심하는 바를 위로했으니, 나와 네가 창화(음률을 맞추듯 조화됨, 화합)하여, 심충(내심, 충정)을 드러내 보이는도다.

 

尋兼本管及夏綏節度都統加太子少師希全以鹽州地當要害自貞元三年西蕃劫盟之後州城陷虜自是塞外無保障靈武勢隔西通鄜坊為邊患朝議是之九年詔曰

이윽고 본관 및 하수절도도통을 겸하고 태자소사를 더했다. 두희전이 염주의 땅이 요해에 맞는 것으로, 정원 3년 서번(토번)이 겁맹(평량겁맹)한 이후부터, 주성이 노적들에게 함락되어; 이로부터 새외에 보장(성보/성장)이 없으니, 영무의 세가 멀어지고, 서쪽으로 부방(부주-방주)과 통하여, 심히 변우의 우려가 된다고 하니, 조의가 그렇다고 여겼다. 9, 조서로 말했다 :

 

設險守國,《易象垂文有備無患先王令典況修復舊制安固疆裏偃甲息人必在於此

험요를 배설해 나라를 지키는 것은, <역상>에 수문(문장이 전함, 유전해 옴)하기를, 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 했으니, 선왕의 영전(좋은 헌장, 법령)이다. 황차 옛 제도를 수복하고, 강리를 평안하게 하고 굳혀, 언갑(갑주를 쉬게 함)하고 사람을 쉬게 하는 것이, 반드시 여기에 있음에야.

 

鹽州地當沖要遠介朔陲東達銀夏西援靈武密邇延慶扞王畿乃者城池失守制備無據千裏庭障烽燧不接三隅要害役戍其勤若非興集師徒繕修壁壘設攻守之具務耕戰之方則封內多虞諸華屢警由中及外皆靡寧居深惟永圖豈忘終食顧以薄德至化未孚既不能復前古之治致四夷之守與其臨事而重擾豈若先備而即安是用弘久遠之謀修五原之壘使邊城有守中夏克寧不有暫勞安能永逸

염주의 땅은 요충에 맞아서, 멀리 삭방의 변방을 끼고 있고, 동쪽으로는 은하(은주-하주)에 달하며, 서쪽으로는 영무를 돕고, 연경에 밀이(가까움)하며, 왕기를 보한(지키고 막음)한다. 내자(가까운 시기)에 성지가 지키는 것을 잃어, 제비(제작하고 비축함)함이 근거를 잃었고, 천 리의 정장(亭障, 변새의 보루, 보장/성장), 봉수가 접해지지 않았으며, 세 변의 요해지가, 수졸들을 사역하여 그 수고로움이 있었다. 만약 군대 무리를 일으켜 모으고, 벽루를 수선하며, 공수의 기구를 설비하고, 경전(농경과 전쟁)의 방도에 힘쓰지 않는다면, 곧 봉내(강역 내)에 우환이 많을 것이고, 제화가 거듭하여 경계해, 그로 말미암아 중외가, 모두 안녕하게 거하지 못할 것이다. 깊이 영구한 계책을 생각건대, 어찌 종식지간(식사를 끝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매우 짧은 시간)이라고 잊겠는가! 박덕(엷은 덕, 겸사)으로 되돌아보매, 교화를 지극히 하는 것은 미부(아직 이루어지지 못함)하니, 이미 이전 옛 치리를 되돌릴 수 없어, 사이의 방비함을 지극히 하여, 그와 더불어 일에 임해 중요(어지러움을 더함, 새로운 우환이 늘어남)하게 되면, 어찌 먼저 대비하여 곧 안녕하게 되는 것과 같겠는가! 이로써 오래도록 멀리까지 유효한 계모를 넓히고, 오원의 성루를 수축하며, 변새의 성에 지키는 것이 있도록 하면, 중하가 지극히 안녕해져, 잠시의 수고도 없게 될 것이니, 어찌 능히 영구히 편안하지 않겠는가?

 

宜令左右神策及朔方河中絳邠寧慶兵馬副元帥渾朔方靈鹽豐夏綏銀節度都統杜希全邠寧節度使張獻甫神策行營節度使邢君牙銀夏節度使韓潭鄜坊節度使王棲曜振武節度使範希朝各於所部簡練將士令三萬五千人同赴鹽州神策將軍張昌宜權知鹽州事應板築雜役取六千人充其鹽州防秋將士率三年滿更代仍委杜彥先具名奏聞悉與改轉

의당 좌우신책 및 삭방 하중 강 빈녕 경 병마부원수 혼감, 삭방 영 염 풍 하 수 은 절도도통 두희전, 빈녕절도사 장헌보, 신책행영절도사 형군아, 은하절도사 한담, 부방절도사 왕서요, 진무절도사 범희조는, 각각 거느린 바에서 장사를 간련(뽑아 훈련시킴)하여, 3 5천명을 영솔해 함께 염주로 가라. 신책장군 장창은 의당 권지염주사로, 판축의 잡역에 응하고, 6천 명을 취하여 충원하라. 그 염주의 방추하는 장사들은, 3년을 채우면 경대(교대함)하고, 이어서 두안선에게 위임하여 이름을 갖추어 주문케 하여, 모두 더불어 개전(관위를 옮겨 전보됨)되도록 하라.

 

朕情非己欲誌在靖人咨爾將相之臣忠良之士輸誠奉命陳力忘憂勉茂功勛永安疆場必集兵事實惟眾心各相率勵以副朕誌

짐의 뜻은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니고, 뜻은 인인들을 평안히 하려는 데에 있다. 너희 장상인 신하들과, 충량한 사인들과 꾀하니, 수성(성심을 실어옴, 바침)하여 명을 받들고, 힘을 펼쳐 우환을 잊으며, 면려하여 공훈을 무성하게 하고, 강장을 영구히 평안하게 하자. 병사를 이루는 것은 반드시, 실로 오로지 무리의 마음이니, 각각 서로 이끌고 힘써, 그로써 짐의 뜻을 도우라.

 

凡役六千人二旬而畢時將板築仍詔涇原劍南山南諸軍深討吐蕃以牽制之由是板築之時虜不及犯塞城畢中外稱賀由是靈武銀夏河西稍安虜不敢深入

무릇 6천 명을 사역하여, 20일이 지나 마쳤다. 이때 장차 판축하려 하여, 이어서 경원, 검남, 산남의 여러 군대에 조서로 깊이 들어가 토번을 쳐서 견제하도록 하여, 이로 말미암아 판축할 때에는, 노적들이 변새를 범하는 데에 미치지 못했다. 성이 완성되자, 중외에서 칭하했다. 이로 말미암아 영무, 은하, 하서는 점점 평안해졌고, 노적들이 감히 깊이 들어오지 못했다.

 

希全久鎮河西晚節倚邊多恣橫帝嘗寬之豐州剌史李景略威名出其右希全深忌之疑畏代己乃誣奏景略德宗不得已為貶之素病風眩暴戾益甚判官監察禦史李起頗忤之希全又誣奏殺之將吏皆重足脅息貞元十年正月卒廢朝三日贈司空

두희전은 오래 하서를 진수하면서, 만절(만년)에는 변상에 의거해 많이 자횡(자만하고 횡포함)하였지만, 황제가 일찍이 그를 관대하게 대했다. 풍주자사 이경략의 위명이 그 미하에서 드러나자, 두희전이 깊이 그를 시기하고, 자신을 대신하게 할까 의심하고 두려워해, 이에 이경략을 무주(참훼하는 주서를 올림)하니; 덕종이 부득이하여 그를 폄적시켰다. 평소 풍현(간질발작? 현기증)을 앓아, 갑자기 성내는 것이 더욱 심했다. 판관인 감찰어사 이기가 자못 그를 거슬러, 두희전이 또 무주하여 그를 죽였다. 장리가 모두 중족(다리가 갈마듦, 비상히 두려워하는 모습)하고 협식(숨을 움츠림, 숨을 죽임, 두려워하는 모양)했다. 정원 10년 정월 졸했는데, 3일간 폐조하고, 사공을 추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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